“섭식장애가 ‘백인 여자 병’? 억압·차별받는 이주민·입양인에 더 흔해”···[만나듣다]⑤마티아스 스트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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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아스 스트란드는 방한 중 광주를 찾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 부교수)가 광주로 간 이유가 궁금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갔죠. 무등산국립공원과 공원 북쪽 대나무숲(담양 죽녹원)도 다녀왔어요.”
한국 방문은 두 번째다. 2년 전 아내와 함께 서울과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는 아내 린다 외스테르베리의 고향이다. 한국 이름은 이선덕. 아내는 국제입양인이다. 이번 방문엔 두 아들도 동행했다. 광주행을 두고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도시라 찾았다”고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념관과 망월동 묘지도 방문했어요. 우리 가족은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역사를 더 깊이 알아가는 일은 입양인인 아내에게 개인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죠.” 광주, 역사, 입양, 트라우마 같은 단어들은 이날 인터뷰 키워드들이다.
스트란드는 오랫동안 섭식장애를 앓는 환자들을 치료해온 의사이자 연구자다. 섭식장애 비영리단체인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대표 박지니가 찾은 인물이주선으로 지난 2일 만났다. 박지니는 스트란드의 2018년 논문 ‘르네 지라르와 섭식장애의 모방적 본성’을 알게 된 뒤 여러 연구를 살펴봤다. 박지니 주선으로 지난 2일 만났다. 이 논문 이야기부터 들었다.
“프랑스 문화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지라르(1923~2015)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봤어요습니다. ‘이웃이 새 차를 샀으니 나도 새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죠. 이런 관점을 섭식장애에도 적용했어요. 우리는 자신의 삶이나 몸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어떤가를 끊임없이 따져본다는 겁니다. ‘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보일까’ ‘내 몸은 현재 신체 기준에 부합할까’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죠.” 지라르는 섭식장애를 현대적인 현상으로 봤다고 한다. “지라르가 강조한 점은,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트란드는 지라르의 이론이 단순하다고도 봤다. 스트란드는 이후 여러 논문연구에서 섭식장애를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문제로만 축소해서 여기는 고정관념을 실증적으로 깨려 했다.
박지니가 인터뷰 제안을 할 때 눈길을 끈 건 이주 배경을 지닌 이들에게서 섭식장애 증상이 더 흔히 나타난다는 내용의 연구(2023년 논문 ‘이주 배경, 섭식장애 증상과 의료서비스 이용(Migration Background, Eating Disorder Symptoms and Healthcare Service Utilisation)’)를 했다는 점이다. 고정관념과 이어지는 문제다. 사람들은 흔히 섭식장애 하면 젊고, 백인이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여성이나 유명인을 떠올리곤 한다. 인터뷰와 공중보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스웨덴에서는 이주민이 백인 스웨덴인보다 섭식장애 증상이 더 흔하게 나타났다.
스트란드는 여러 요인을 꼽는다.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한 요소다. 그가 만난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백인이 다수인 스웨덴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가난한 이주민들에겐 ‘식량 빈곤’이나 ‘식량 불안정’ 같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구하지 못하는 상태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가족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먹는 밥도 섭식장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국제입양인들은 이주민과 비슷하거나 다른 처지에 각각 놓인다. 이주민은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동시에 두 문화 모두에 접근할 수 있다. 스트란드는 한국인 부모를 따라 스웨덴으로 이주한 자녀의 사례를 들었다. “이 아이는 스웨덴어를 하고, 스웨덴 친구들이 있으며, 스웨덴 문화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한국어도 하고 한국에도 갈 수 있죠. 두 세계 모두에 속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는 스웨덴어만 알고, 백인들 사이에서만 성장했으며, 다른 한국인을 만나본 적도 없고, 한국에 관해 아는 것도 없을 수 있다. 스트란드는 “제 아내가 그런 경우다. 1980~1990년대에는 입양아에게 자신의 출생국을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가 아니었다. 자신의 뿌리와 단절된 많은 입양인이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사망할 위험은 입양인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4~5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도 했다. 이주민과 마찬가지로 섭식장애도 흔하게 나타난다. 스트란드는 지금 섭식장애와 입양 연구에 더 집중한다고 했다.
섭식장애 치료는 쉽지 않다. 이른바 ‘백인 여자 병’이란 고정관념이 치료를 막는 요인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나는 흑인인데, 아시아인인데, 라틴계인데 어떻게 섭식장애를 앓을 수 있겠느냐’는 시선을 받는다고 했어요.” 이주민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스트란드는 “‘여자들만 걸리는 병’이라는 시선 때문에 남성들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섭식장애를 외모에 대한 집착이나 아름다워지려는 욕망과 연결해 생각한다. “허영심 때문인 경우는 많지 않아요. 학교에서 체중 때문에 놀림을 받은 사람은 필사적으로 체중을 바꾸고 싶어 하죠.”
환자들은 ‘통제감’을 얻으려 한다고도 했다. “환자들은 자신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고 자주 이야기해요. 직장이나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 특정한 모습에 대한 압박 등도 있고요. 자신이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는 게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뿐일 수 있어요. 일부는 피부색은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전형적으로 마른 백인 여성 몸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란드는 이런 시도엔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는 “이 역시 그 사회에 속하려는 노력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섭식장애를 개인 의지나 자기관리 문제로 보는 시선이다. 스트란드는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을 단순히 ‘먹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처음엔 다이어트를 하거나 몸을 바꾸려는 의식적, 혹은 반쯤 의식적인 선택에서 시작할 수 있어요. 섭식장애가 자리 잡으면, 더는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로 조절할 수 없어요. 대부분의 환자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병에 갇혀버리는 거죠.” 가족이나 친구들도 이 점을 잘 모른 채 먹기를 권유, 강요하거나 생각을 바꾸라고 설득하려 한다.
스트란드는 “섭식장애는 단순히 태도나 마음가짐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힘들어하는 걸 안다. 도와주고 싶다’며 지지하고, 곁을 지키는 게 제일 좋습니다. 또 전문적인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데 힘을 써야죠.” 스트란드는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왜 변해야 하는가’다. 때로는 음식 자체보다 삶과 다시 연결하도록 도울 때 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의미 있는 활동을 찾는 겁니다. 이 의미는 철학적, 종교적인 게 아니라 질병 때문에 잃어버렸던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찾는 일입니다. 친구를 사귀고, 학교로 돌아가거나 일을 시작하는 것이죠.” 그는 이 과정에서 다른 변화도 이루고 싶다는 동기를 얻을 때가 많다고 본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들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 먹어야 한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깨닫죠.”
스트란드는 환자들의 문화적 배경과 삶의 역사, 사회적 경험을 함께 이해하려 한다. 그는 “더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문화정신의학’도 연구한 그는 “문화는 우리가 고통과 괴로움을 어떻게 표현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런 예를 들었다. “배우자를 잃은 뒤 가끔 그 사람 목소리가 들리거나, 곁에 있는 것 같은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어떤 문화에서는 이를 슬픔을 겪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경험으로 받아들이죠. 생물의학적 관점이 강한 문화에서는 ‘환청을 듣고 있다. 정신병적 증상이다.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길 겁니다.” 그는 “문화와 생물학은 늘 함께 작동한다. 정신질환을 들여다보려면 여러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과 ‘화병’도 예로 들었다. “한국의 핵심적인 정서다. 매우 중요한 문화적 요소다. 한국 문화에서는 매우 자연스럽지만, 외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이런 감정들이 섭식장애 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더 많이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정신과 진료와 치료, 회복에서 그가 강조하는 건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정신의학이나 더 넓게는 의료에서는 종종 ‘환자를 완전히 이해해야만 제대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성장 과정이나 문화적 배경, 나이 등이 다른) 환자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문화적 차이 등은 문제가 아닙니다. 차이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그 안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함께 탐색하는 것이죠.”
그 탐색 도구 중 하나가 문화정식화면담(Cultural Formulation Interview·CFI)이다. “환자가 한국 출신이라면, ‘한국에서는 이런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우울증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표현을 쓰시겠습니까’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우울의 경험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찾는 거죠.” 그는 “의사가 ‘당신은 우울증이다. 뇌 신경전달물질 문제 때문일 수도, 삶에서 겪은 어려운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로 좋아질 수 있다’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환자 자신은 이 병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CFI는 바로 그것을 탐색하기 위한 도구”라고 했다.
“환자는 ‘제가 자란 곳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같은 답을 할 수 있죠. 이런 면담 과정을 통해 환자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진단 과정 자체도 치료 의미가 를 가질 수 있죠다고 생각해요.” 스트란드는 연장선에서 중증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가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단기 입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자기 입원’도 치료법으로 제시했다.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는 ‘잘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악순환에서도 벗어나기 쉬워진다’며 체중 회복에 큰 비중을 둔다. 자기 입원은 ‘환자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언제든 병원에 올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치료법이다. ‘당신은 이 정도는 먹어야 합니다’라고 설득하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으려는 치료법이다.
스트란드는 환자들의 회복력 즉 ‘삶의 문제를 감당해내는 능력’도 강조한다. 이주민 연구 때 이 능력을 확인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죠. 사회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정신의학은 주로 도움이 필요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결국 헤쳐나가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력이 있습니다.”
스트란드의 연구 목록은 재난과 트라우마도 포함하는데, 그는 사람들의 상처, 고통과 함께 자부심과 회복력에도 주목했다. 5·18민주화운동을 두고도 “많은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견뎌냈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이 더 나은 사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뤄낸 성취”라며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가 반드시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심리적 고통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광주를 방문하면서 제가 받은 인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와 유산에서 어떤 힘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때 스트란드의 입에서 ‘한’과 ‘화병’에다 ‘김밥’ ‘먹방’ 같은 한국어가 술술 나왔다. 자신의 섭식장애 환자들이 먹방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먹방’ 논문도 썼다. 한국의 섭식장애를 다룬 의학 논문 여러 편도 읽었다고 했다. 방문 중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나종호와 인구학자 조영태가 각각 자살과 저출생에 관해 이야기한 팟캐스트도 찾아 들었다. 인터뷰 전 비는 시간 서울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올 정도로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인터뷰 뒤 사진 촬영하러 찾은 정동역사공원 러시아공사관이 ‘아관파천’ 장소라는 것도 알았다.
‘지한파 의사’이자 트라우마 연구자인 그에게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에 대해서도 물었다. “마침 어제(1일) 가족이 스타벅스에 있었다.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함께 기사를 찾아봤다. 모든 세부 내용을 아는 건 아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기업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활용해 이익을 얻으려 했다면, 그것은 매우 냉소적인 행동처럼 느껴져요. 공동체가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죠. 동시에 그 사람이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는 길도 열어둬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바로잡은 뒤 다시 나아갈 기회 말입니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스타벅스 가야지’ 구호를 두고도 “매우 부끄럽고 잘못된 행동”이라면서도 “평생 공개적으로 낙인찍고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게 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스트란드는 한 묶음인 이 두 사안을 두고 극우 확산의 계기를 우려하는 듯했다. “극우 성향의 일부 집단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조작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 걸로 압니다. 이런 인식이 일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점차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공개적인 망신주기 방식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극단적인 견해를 더 고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다시 돌아올 길이 없다고 느끼면 오히려 극단적인 입장에 더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스트란드는 원래는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아마도 TV 드라마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소아과 의사는 흔히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나. 예를 들면 의 조지 클루니 같은 인물 말이다”라며 웃었다. 인턴이 되고 잦은 당직과 반복적, 기계적인 업무 때문에 회의했다. 인턴 과정의 일부로 정신과에서 일하면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했다. “각 환자 이야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를 듣고, 더 생각하고, 토론해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신의학은 개별 인간 자체에 더 다가서는 분야였어요. 내 자신이 더 인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했어요.”
인터뷰 말미 두 번째 방한에 관한 간단한 소감을 물었을 때 “많은 한국인 마음 깊은 곳엔 어떤 슬픔이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다.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분단 상태도 과거 일을 완전히 뒤로하고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더 알고 싶은 주제”라고 했다. 그는 “관광객으로서 제가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는 전제로 답했지만, ‘인간적’인 답변인 건 분명해 보였다.
경찰이 사회적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범죄를 1년간 전담 수사해 112명을 검거했다. 전담 수사과가 신설된 뒤 2차 가해 댓글은 줄어드는 추세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2차가해범죄수사과는 지난해 7월부터 이달까지 1년간 112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3명을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2차 가해 사건 별로는 이태원 참사 179건, 세월호 참사 34건, 기타 31건, 여객기 참사 28건 순으로 많았다.
경찰은 수사와 별도로 2차 가해 게시물 6091건에 대한 삭제·차단도 요청했다. 삭제 요청은 반대로 세월호 참사 관련이 355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이태원 참사(1181건), 기타(1100건), 여객기 참사(260건) 순이었다.
2차가해범죄수사과는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에 엄정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7월28일 국수본에 신설된 전담 조직이다.
전담부서 출범 이후 2차 가해 댓글 비율은 꾸준히 줄었다. 경찰청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포털에 게시된 참사 관련 댓글을 분석한 결과, 출범 전(지난해 5월~7월) 28%이던 2차 가해 댓글 비율은 출범 이후(지난해 8월~올해 6월) 19.8%로 8.2%포인트 낮아졌다.
구속 사례가 알려질 때마다 비율은 더욱 감소했다. 지난 1월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에게 2차 가해 게시글을 쓴 60대 남성이 구속되자 비율은 25%에서 23%로 내려갔다. 지난 4·5월 구속 사례가 잇따라 알려진 뒤에도 19%에서 17%로 감소세가 이어졌다.
국민 설문조사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경찰이 국민참여 플랫폼인 ‘국민생각함’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83명 중 61.9%가 “경찰 활동이 2차 가해 행위의 형사처벌 인식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처벌 강화와 교육·홍보 확대 등이 향후 과제로 꼽혔다.
박우현 경찰청 사이버수사심의관은 “2차 가해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중대한 범죄”라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2차 가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살레 알란티시(29)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고향 집에서 1㎞ 떨어진 거리에는 넓은 바다가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사진을 남긴 친구들 대부분은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죽었다. 살레의 고향 집은 파괴됐고 가족들은 이집트로 피난 갔다.
가자지구 상황이 참혹해지자 2022년 12월 한국에 온 살레는 지난 16일 법무부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2023년 3월 난민 신청한 지 3년4개월 만이다. 그는 지난 2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안정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돼 벅찬 기쁨을 느낀다”며 “가장 기본적 인권을 얻는 것이 축하할만한 일이 됐는지 묻게 된다”고 말했다.
살레의 지난 3년4개월은 “삶이 멈춘 상태”였다. 지난해 여름 가자지구 출신 배우자와 결혼했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배우자를 한국으로 부를 수 없었다. 건강보험이 따로 없어 병원에 가지 않도록 늘 조심했다. 살레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좋은 생각일지도 많이 고민했다”며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까 싶어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살레는 자신을 ‘운이 좋은 난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의 난민 심사 결과를 받기까지 3~4년은 기본이며 7~8년을 기다리는 경우를 많이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살레 자신도 난민 신청 이후 상당 기간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아무런 메시지나 연락을 받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다. 절차에 대해 문의할 때마다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팔레스타인 관련 강연에서 만난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의 법률적 도움이 심사 진행에 도움이 됐다.
살레는 “한국은 엄격한 난민 인정 제도를 갖고 난민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난민 심사) 결론이 나기까지 오래 걸리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와 여행을 자유롭게 할 권리, 건강보험을 들 권리, 일할 권리 등 기본적 권리가 난민이 돼야 생긴다”며 “난민 신청자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가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살레는 난민 인정을 계기로 “애초에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분노와 씁쓸함”을 느끼게 됐다고도 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은 각종 폭력과 폭격, 전기·수도·생필품 부족 등을 겪으며 고향을 떠날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가 발언하고, 가자지구 실태를 알리는 학교·비영리단체 강연 활동을 주로 해온 이유다.
살레는 한국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자주 경험해왔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본다. 그는 “가자지구의 현실을 알면 그렇게 반응할 수 없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을 잘 모르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러한 (인식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레의 답은 “더 많이 말하고 알리는 것”이다. 난민 인정을 통해 지위가 안정되며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갈 환경이 조성됐다. 살레는 한국 시민단체 등과의 연대 활동뿐 아니라 책 쓰기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희망과 결단력을 갖고 한국에서 다음 삶의 장을 기대하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투쟁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은 두 번째다. 2년 전 아내와 함께 서울과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는 아내 린다 외스테르베리의 고향이다. 한국 이름은 이선덕. 아내는 국제입양인이다. 이번 방문엔 두 아들도 동행했다. 광주행을 두고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도시라 찾았다”고도 했다.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념관과 망월동 묘지도 방문했어요. 우리 가족은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역사를 더 깊이 알아가는 일은 입양인인 아내에게 개인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죠.” 광주, 역사, 입양, 트라우마 같은 단어들은 이날 인터뷰 키워드들이다.
스트란드는 오랫동안 섭식장애를 앓는 환자들을 치료해온 의사이자 연구자다. 섭식장애 비영리단체인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대표 박지니가 찾은 인물이주선으로 지난 2일 만났다. 박지니는 스트란드의 2018년 논문 ‘르네 지라르와 섭식장애의 모방적 본성’을 알게 된 뒤 여러 연구를 살펴봤다. 박지니 주선으로 지난 2일 만났다. 이 논문 이야기부터 들었다.
“프랑스 문화이론가이자 철학자인 지라르(1923~2015)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봤어요습니다. ‘이웃이 새 차를 샀으니 나도 새 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죠. 이런 관점을 섭식장애에도 적용했어요. 우리는 자신의 삶이나 몸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어떤가를 끊임없이 따져본다는 겁니다. ‘나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보일까’ ‘내 몸은 현재 신체 기준에 부합할까’ 같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죠.” 지라르는 섭식장애를 현대적인 현상으로 봤다고 한다. “지라르가 강조한 점은,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해서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스트란드는 지라르의 이론이 단순하다고도 봤다. 스트란드는 이후 여러 논문연구에서 섭식장애를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문제로만 축소해서 여기는 고정관념을 실증적으로 깨려 했다.
박지니가 인터뷰 제안을 할 때 눈길을 끈 건 이주 배경을 지닌 이들에게서 섭식장애 증상이 더 흔히 나타난다는 내용의 연구(2023년 논문 ‘이주 배경, 섭식장애 증상과 의료서비스 이용(Migration Background, Eating Disorder Symptoms and Healthcare Service Utilisation)’)를 했다는 점이다. 고정관념과 이어지는 문제다. 사람들은 흔히 섭식장애 하면 젊고, 백인이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여성이나 유명인을 떠올리곤 한다. 인터뷰와 공중보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스웨덴에서는 이주민이 백인 스웨덴인보다 섭식장애 증상이 더 흔하게 나타났다.
스트란드는 여러 요인을 꼽는다.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한 요소다. 그가 만난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백인이 다수인 스웨덴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외모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가난한 이주민들에겐 ‘식량 빈곤’이나 ‘식량 불안정’ 같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영양가 있는 음식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구하지 못하는 상태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가족과 단절된 상태에서 혼자 먹는 밥도 섭식장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국제입양인들은 이주민과 비슷하거나 다른 처지에 각각 놓인다. 이주민은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동시에 두 문화 모두에 접근할 수 있다. 스트란드는 한국인 부모를 따라 스웨덴으로 이주한 자녀의 사례를 들었다. “이 아이는 스웨덴어를 하고, 스웨덴 친구들이 있으며, 스웨덴 문화를 이해합니다. 동시에 한국어도 하고 한국에도 갈 수 있죠. 두 세계 모두에 속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는 스웨덴어만 알고, 백인들 사이에서만 성장했으며, 다른 한국인을 만나본 적도 없고, 한국에 관해 아는 것도 없을 수 있다. 스트란드는 “제 아내가 그런 경우다. 1980~1990년대에는 입양아에게 자신의 출생국을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인 문화가 아니었다. 자신의 뿌리와 단절된 많은 입양인이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로 사망할 위험은 입양인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4~5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도 했다. 이주민과 마찬가지로 섭식장애도 흔하게 나타난다. 스트란드는 지금 섭식장애와 입양 연구에 더 집중한다고 했다.
섭식장애 치료는 쉽지 않다. 이른바 ‘백인 여자 병’이란 고정관념이 치료를 막는 요인 중 하나다. “많은 이들이 ‘나는 흑인인데, 아시아인인데, 라틴계인데 어떻게 섭식장애를 앓을 수 있겠느냐’는 시선을 받는다고 했어요.” 이주민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스트란드는 “‘여자들만 걸리는 병’이라는 시선 때문에 남성들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들은 섭식장애를 외모에 대한 집착이나 아름다워지려는 욕망과 연결해 생각한다. “허영심 때문인 경우는 많지 않아요. 학교에서 체중 때문에 놀림을 받은 사람은 필사적으로 체중을 바꾸고 싶어 하죠.”
환자들은 ‘통제감’을 얻으려 한다고도 했다. “환자들은 자신이 많은 것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고 자주 이야기해요. 직장이나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 특정한 모습에 대한 압박 등도 있고요. 자신이 통제 가능하다고 느끼는 게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뿐일 수 있어요. 일부는 피부색은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전형적으로 마른 백인 여성 몸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란드는 이런 시도엔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는 “이 역시 그 사회에 속하려는 노력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섭식장애를 개인 의지나 자기관리 문제로 보는 시선이다. 스트란드는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을 단순히 ‘먹기를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처음엔 다이어트를 하거나 몸을 바꾸려는 의식적, 혹은 반쯤 의식적인 선택에서 시작할 수 있어요. 섭식장애가 자리 잡으면, 더는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로 조절할 수 없어요. 대부분의 환자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병에 갇혀버리는 거죠.” 가족이나 친구들도 이 점을 잘 모른 채 먹기를 권유, 강요하거나 생각을 바꾸라고 설득하려 한다.
스트란드는 “섭식장애는 단순히 태도나 마음가짐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힘들어하는 걸 안다. 도와주고 싶다’며 지지하고, 곁을 지키는 게 제일 좋습니다. 또 전문적인 치료를 받도록 도와주는 데 힘을 써야죠.” 스트란드는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왜 변해야 하는가’다. 때로는 음식 자체보다 삶과 다시 연결하도록 도울 때 치료가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의미 있는 활동을 찾는 겁니다. 이 의미는 철학적, 종교적인 게 아니라 질병 때문에 잃어버렸던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되찾는 일입니다. 친구를 사귀고, 학교로 돌아가거나 일을 시작하는 것이죠.” 그는 이 과정에서 다른 변화도 이루고 싶다는 동기를 얻을 때가 많다고 본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들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사실, 먹어야 한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깨닫죠.”
스트란드는 환자들의 문화적 배경과 삶의 역사, 사회적 경험을 함께 이해하려 한다. 그는 “더 정확한 진단과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문화정신의학’도 연구한 그는 “문화는 우리가 고통과 괴로움을 어떻게 표현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런 예를 들었다. “배우자를 잃은 뒤 가끔 그 사람 목소리가 들리거나, 곁에 있는 것 같은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어떤 문화에서는 이를 슬픔을 겪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경험으로 받아들이죠. 생물의학적 관점이 강한 문화에서는 ‘환청을 듣고 있다. 정신병적 증상이다. 약물치료가 필요하다’고 여길 겁니다.” 그는 “문화와 생물학은 늘 함께 작동한다. 정신질환을 들여다보려면 여러 측면을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과 ‘화병’도 예로 들었다. “한국의 핵심적인 정서다. 매우 중요한 문화적 요소다. 한국 문화에서는 매우 자연스럽지만, 외부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이런 감정들이 섭식장애 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더 많이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정신과 진료와 치료, 회복에서 그가 강조하는 건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정신의학이나 더 넓게는 의료에서는 종종 ‘환자를 완전히 이해해야만 제대로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성장 과정이나 문화적 배경, 나이 등이 다른) 환자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계속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죠.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문화적 차이 등은 문제가 아닙니다. 차이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고, 그 안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함께 탐색하는 것이죠.”
그 탐색 도구 중 하나가 문화정식화면담(Cultural Formulation Interview·CFI)이다. “환자가 한국 출신이라면, ‘한국에서는 이런 상태를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우울증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표현을 쓰시겠습니까’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우울의 경험이 환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함께 찾는 거죠.” 그는 “의사가 ‘당신은 우울증이다. 뇌 신경전달물질 문제 때문일 수도, 삶에서 겪은 어려운 경험 때문일 수도 있다. 약물치료나 심리치료로 좋아질 수 있다’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정작 환자 자신은 이 병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묻지 않는 경우가 많다. CFI는 바로 그것을 탐색하기 위한 도구”라고 했다.
“환자는 ‘제가 자란 곳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됩니다.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같은 답을 할 수 있죠. 이런 면담 과정을 통해 환자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진단 과정 자체도 치료 의미가 를 가질 수 있죠다고 생각해요.” 스트란드는 연장선에서 중증 신경성 식욕부진증 환자가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단기 입원을 요청하는 내용의 ‘자기 입원’도 치료법으로 제시했다. 의사들의 진단과 치료는 ‘잘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악순환에서도 벗어나기 쉬워진다’며 체중 회복에 큰 비중을 둔다. 자기 입원은 ‘환자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언제든 병원에 올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치료법이다. ‘당신은 이 정도는 먹어야 합니다’라고 설득하려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으려는 치료법이다.
스트란드는 환자들의 회복력 즉 ‘삶의 문제를 감당해내는 능력’도 강조한다. 이주민 연구 때 이 능력을 확인했다. “새로운 나라에서 다시 삶을 시작하죠. 사회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자녀들에게 더 나은 삶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정신의학은 주로 도움이 필요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어려움을 결국 헤쳐나가는, 놀라울 정도로 회복력이 있습니다.”
스트란드의 연구 목록은 재난과 트라우마도 포함하는데, 그는 사람들의 상처, 고통과 함께 자부심과 회복력에도 주목했다. 5·18민주화운동을 두고도 “많은 한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견뎌냈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이 더 나은 사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뤄낸 성취”라며 이렇게 말했다. “트라우마가 반드시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같은 심리적 고통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광주를 방문하면서 제가 받은 인상은, 사람들이 자신의 역사와 유산에서 어떤 힘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뷰 때 스트란드의 입에서 ‘한’과 ‘화병’에다 ‘김밥’ ‘먹방’ 같은 한국어가 술술 나왔다. 자신의 섭식장애 환자들이 먹방을 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먹방’ 논문도 썼다. 한국의 섭식장애를 다룬 의학 논문 여러 편도 읽었다고 했다. 방문 중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나종호와 인구학자 조영태가 각각 자살과 저출생에 관해 이야기한 팟캐스트도 찾아 들었다. 인터뷰 전 비는 시간 서울역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올 정도로 한국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인터뷰 뒤 사진 촬영하러 찾은 정동역사공원 러시아공사관이 ‘아관파천’ 장소라는 것도 알았다.
‘지한파 의사’이자 트라우마 연구자인 그에게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에 대해서도 물었다. “마침 어제(1일) 가족이 스타벅스에 있었다.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함께 기사를 찾아봤다. 모든 세부 내용을 아는 건 아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기업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활용해 이익을 얻으려 했다면, 그것은 매우 냉소적인 행동처럼 느껴져요. 공동체가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죠. 동시에 그 사람이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는 길도 열어둬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바로잡은 뒤 다시 나아갈 기회 말입니다.”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의 ‘스타벅스 가야지’ 구호를 두고도 “매우 부끄럽고 잘못된 행동”이라면서도 “평생 공개적으로 낙인찍고 수치심을 안고 살아가게 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스트란드는 한 묶음인 이 두 사안을 두고 극우 확산의 계기를 우려하는 듯했다. “극우 성향의 일부 집단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거나, 조작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는 걸로 압니다. 이런 인식이 일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점차 받아들여지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공개적인 망신주기 방식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극단적인 견해를 더 고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다시 돌아올 길이 없다고 느끼면 오히려 극단적인 입장에 더 매달릴 수도 있습니다.”
스트란드는 원래는 소아과 의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아마도 TV 드라마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소아과 의사는 흔히 좋은 사람으로 묘사되지 않나. 예를 들면 의 조지 클루니 같은 인물 말이다”라며 웃었다. 인턴이 되고 잦은 당직과 반복적, 기계적인 업무 때문에 회의했다. 인턴 과정의 일부로 정신과에서 일하면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했다. “각 환자 이야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를 듣고, 더 생각하고, 토론해야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신의학은 개별 인간 자체에 더 다가서는 분야였어요. 내 자신이 더 인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했어요.”
인터뷰 말미 두 번째 방한에 관한 간단한 소감을 물었을 때 “많은 한국인 마음 깊은 곳엔 어떤 슬픔이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다.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분단 상태도 과거 일을 완전히 뒤로하고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더 알고 싶은 주제”라고 했다. 그는 “관광객으로서 제가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는 전제로 답했지만, ‘인간적’인 답변인 건 분명해 보였다.
경찰이 사회적 참사에 대한 2차 가해 범죄를 1년간 전담 수사해 112명을 검거했다. 전담 수사과가 신설된 뒤 2차 가해 댓글은 줄어드는 추세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2차가해범죄수사과는 지난해 7월부터 이달까지 1년간 112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3명을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2차 가해 사건 별로는 이태원 참사 179건, 세월호 참사 34건, 기타 31건, 여객기 참사 28건 순으로 많았다.
경찰은 수사와 별도로 2차 가해 게시물 6091건에 대한 삭제·차단도 요청했다. 삭제 요청은 반대로 세월호 참사 관련이 355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이태원 참사(1181건), 기타(1100건), 여객기 참사(260건) 순이었다.
2차가해범죄수사과는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한 2차 가해에 엄정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7월28일 국수본에 신설된 전담 조직이다.
전담부서 출범 이후 2차 가해 댓글 비율은 꾸준히 줄었다. 경찰청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6월까지 포털에 게시된 참사 관련 댓글을 분석한 결과, 출범 전(지난해 5월~7월) 28%이던 2차 가해 댓글 비율은 출범 이후(지난해 8월~올해 6월) 19.8%로 8.2%포인트 낮아졌다.
구속 사례가 알려질 때마다 비율은 더욱 감소했다. 지난 1월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에게 2차 가해 게시글을 쓴 60대 남성이 구속되자 비율은 25%에서 23%로 내려갔다. 지난 4·5월 구속 사례가 잇따라 알려진 뒤에도 19%에서 17%로 감소세가 이어졌다.
국민 설문조사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경찰이 국민참여 플랫폼인 ‘국민생각함’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83명 중 61.9%가 “경찰 활동이 2차 가해 행위의 형사처벌 인식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고 평가했다. 처벌 강화와 교육·홍보 확대 등이 향후 과제로 꼽혔다.
박우현 경찰청 사이버수사심의관은 “2차 가해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중대한 범죄”라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2차 가해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살레 알란티시(29)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고향 집에서 1㎞ 떨어진 거리에는 넓은 바다가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사진을 남긴 친구들 대부분은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죽었다. 살레의 고향 집은 파괴됐고 가족들은 이집트로 피난 갔다.
가자지구 상황이 참혹해지자 2022년 12월 한국에 온 살레는 지난 16일 법무부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2023년 3월 난민 신청한 지 3년4개월 만이다. 그는 지난 24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안정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돼 벅찬 기쁨을 느낀다”며 “가장 기본적 인권을 얻는 것이 축하할만한 일이 됐는지 묻게 된다”고 말했다.
살레의 지난 3년4개월은 “삶이 멈춘 상태”였다. 지난해 여름 가자지구 출신 배우자와 결혼했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배우자를 한국으로 부를 수 없었다. 건강보험이 따로 없어 병원에 가지 않도록 늘 조심했다. 살레는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좋은 생각일지도 많이 고민했다”며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까 싶어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살레는 자신을 ‘운이 좋은 난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의 난민 심사 결과를 받기까지 3~4년은 기본이며 7~8년을 기다리는 경우를 많이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살레 자신도 난민 신청 이후 상당 기간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아무런 메시지나 연락을 받지 못한 채” 기다려야 했다. 절차에 대해 문의할 때마다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다. 팔레스타인 관련 강연에서 만난 이일 변호사(공익법센터 어필)의 법률적 도움이 심사 진행에 도움이 됐다.
살레는 “한국은 엄격한 난민 인정 제도를 갖고 난민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며 “(난민 심사) 결론이 나기까지 오래 걸리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와 여행을 자유롭게 할 권리, 건강보험을 들 권리, 일할 권리 등 기본적 권리가 난민이 돼야 생긴다”며 “난민 신청자들이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가 인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살레는 난민 인정을 계기로 “애초에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분노와 씁쓸함”을 느끼게 됐다고도 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가자지구 주민들은 각종 폭력과 폭격, 전기·수도·생필품 부족 등을 겪으며 고향을 떠날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 적극적으로 나가 발언하고, 가자지구 실태를 알리는 학교·비영리단체 강연 활동을 주로 해온 이유다.
살레는 한국 사회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자주 경험해왔다. 팔레스타인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본다. 그는 “가자지구의 현실을 알면 그렇게 반응할 수 없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을 잘 모르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러한 (인식의) 공백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살레의 답은 “더 많이 말하고 알리는 것”이다. 난민 인정을 통해 지위가 안정되며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갈 환경이 조성됐다. 살레는 한국 시민단체 등과의 연대 활동뿐 아니라 책 쓰기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희망과 결단력을 갖고 한국에서 다음 삶의 장을 기대하고 있다”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고 투쟁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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